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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명, 나의삶. 모든것들을 다해 전력질주한다!
by 나우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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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들이 말해주지 않는 ‘동성애에 대한 비밀’ - 동성애자의 양심고백-
안녕하세요? 동성애 주제가 논란이 되는 이 시점에, 저의 동성애 체험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저는 초등학생 고학년 때부터 동성애를 느꼈고 대학에 들어와 종로, 이태원에서 동성애자 커뮤니티에 가입하였습니다. 29살에 동성애를 극복하기 위해 결심하였고 6년이 지난 지금은 여성과 교제 수준에 이를 정도로 동성애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지금도 종로와 이태원 어디에 게이바가 있는지 족족 집어낼 수 있을 정도로 그쪽 실상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동성애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두 남자가 산에서 일을 하며 동성애를 경험하고 사랑하게 된 내용으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일반인들은 감동적이었다고 했으나 정작 동성애자들은 그다지 공감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유는 동성애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 식성
처음 PC 천리안 통신을 통하여 그쪽에 나갔을 때 만난 형이 있었는데 그 형은 ‘뚱뚱한 남자만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 다. 실제로 그 형은 뚱뚱한 남자만 만나고 그런 남자가 아니면 아무 감정을 못 느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종로의 게이바에는 실제 뚱뚱한 사람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만 출입하는 게이바가 있고 그러한 취향의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일반 사회에서는 그렇게까지 특정한 체형을 숭배하듯 좋아하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는데 좀 이상했지만 큰 신경은 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동성애자들이 하루에도 수도 없이 생각하고 말하는 소위 ‘식성’이라는 것입니다. 식성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속어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동성애자들은 식성에 의해 상대방을 구하는데, 위에 예로 든 뚱뚱한 체형, 평범 체형, 근육질 체형, 뚱뚱하지만 근육질의 얼굴과 몸에 털이 많은 베어스타일, 중년남 등등 동성애자들은 각자의 고정적인 식성에 의해 교제 상대를 찾습니다.
물론 이성애자들도 스타일을 말하긴 하지만 이상형에 대한 추구일 뿐 사귀다가 마음에 들면 그냥 내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즉 이성애자들의 스타일은 이성간의 애정 관계 형성에 있어서 절대적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 다.
하지만 동성애자의 식성은 절대적입니다. 실제 뚱뚱한 사람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도 배가 많이 나온 스타일, 단순 비만 체형, 혹은 몸에 털이 많고 근육질의 베어스타일 등 추구하는 종류가 세분화되며, 이들은 자기가 추구하는 체형, 외모 외에는 절대 눈을 주지 않습니다. 반면 평범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들은 절대 뚱뚱한 사람엔 눈길을 주지 않으 며 그들이 가는 게이바에도 출입하지 않습니다. 시간 낭비이기 때문입니다. 또 키가 작고 아이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는 그런 사람만 찾으며, 중년층의 아저씨를 좋아하는 동성애자는 꼰대바(중년 동성애자들이 가는 게이바)를 주로 찾아다닙니다. 이들에게는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젊은 사람은 연애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워낙 식성이 고정적이다보니 게이바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맨 처음 하는 질문이 항상 “식성이 어떻게 되세요?”입니다. 서로 식성이 맞아야 사귈 수 있으니까요. 이성애자들은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퇴짜를 놓아도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물밑 작전을 벌여 마음을 얻기도 하지만, 동성애자들 사이에선 ‘식성이 안 된다’고 하면 바로 포기합 니다. 구애를 하는 자신 스스로도 식성이 안 되는 사람이 자신에게 구애를 한다고 마음을 절대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자들은 식성을 만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인터넷 카페도 체형별로 분류되어 가입하고, 채팅 시스템도 미리 자신 의 체형과 나이, 원하는 식성을 입력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성을 만날 확률이 적으므로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식성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드물게 ‘잡식’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러 스타일 중에서 가장 괜찮은 사람들을 좋아하는 동성애자가 있습니다. 언뜻 보면 이들은 식성에 구애를 안 받는 것 같아 보이지만 여러 개의 식성을 가지고 있을 뿐 식성을 통하여 상대방을 구하는 것 은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처음 예를 들었던 뚱뚱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형은 매우 평범한 체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뚱뚱한 동성 애자는 이상하게도 뚱뚱한 동성애자를 좋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몇 년 후 우연히 그 형을 만났을 때 형은 살을 일부러 있는 대로 찌워 뱃살이 비정상적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애인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찌웠다고 합니다.
식성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외모로 인한 ‘성욕’이 식성의 모티브입니다. 사람의 내면이나 그 밖에 그 사람을 이루고 있는 것들, 교감 등 다 소용 없습니다. 동성애자들은 식성을 보면 그의 신체를 탐하고자 하는 욕구가 급상승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식성이 통하면 거의 대부분 만난 첫날 성관계를 가집니다. ‘식성 발견→성욕 증대→성관계→애정관계 형성’, 이것이 이들의 사랑 방식입니다.
동성애자들은 일반 사회에서도, 군대에서도, 일반 사우나에서도 식성을 찾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하루에 수도 없이 식성을 말합니다. 길을 지나는 남자 중 마음에 들면 ‘식성 지나간다’고 말하고, 그 남자의 외모에서 온 몸으로 성적 모티브를 얻는다면 ‘올(all)식’이라고 표현합니다. 올식을 만나면 성적 욕구가 최강으로 증대되므로 정신 차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짝사랑은 온 몸으로 그에게 성욕을 느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시에 여러 명을 짝사랑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어린 남자 아이들이 멋진 군인이나 경찰을 보며 동경하는 것은 남성성에 대한 강한 열망입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남성성이 온전히 자라지 못하고 여성성이 채워졌다면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자는 여성화되고 그는 무의식 속에 채워지지 못한 남성성을 갈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건장하게 잘 자란 다른 남성의 육체를 통해 얻어지며 이것이 식성 중에 동성애자 티가 전혀 나지 않는 100% 남자가 가장 인기 있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남성성의 훼손을 다른 남자를 통하여 갈구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무의식 중에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스타일이나 갈구하는 스타일이 바로 ‘식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동성애자를 넘어선 성전환자들이 왜 나오는지도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동성애자들이 식성에 대해 어떠한 변명을 하더라도 믿지 마십시오. 대통령/장관/재판관/국회의원님은 동성애 세계를 경험한 적이 없으셔서 쉽게 판단이 안 서실 것입니다. 알기 원하신다면 저에게 연락하여 주십시오. 대통령/장관/ 재판관/국회의원님께서 직접 게이바를 저와 함께 둘러 보셔도 좋습니다. 게이바 몇 군데 들러보시면 제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2. 때짜와 마짜
‘때짜’는 성관계에서 남성 역할을 하는 동성애자이고, 반대로 ‘마짜’는 여성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거의 일반 남성과 다름없는 남성성을 보여야 때짜로 인정하지, 여성성이 다분하면 마짜들은 콧방귀 끼며 그런 때짜와 성관계 갖는 것은 상상만 해도 불쾌하다고 말합니다. 또한 마짜들도 자존심 때문에 마짜라고 말하기 보다 대부분 ‘올(all)’(때짜와 마짜 둘 다 가능)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의 평소 행동을 살펴보면 ‘올마’(완전한 마짜)인지 아닌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마짜의 성역할이 편하고 쾌감이 크므로 때짜보다 마짜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평때박마’라는 말이 있는데, 평소엔 때짜인 척 하다가 박을 타는(성관계의 속어) 순간에는 마짜로 돌변하는 사람의 줄임말입니다. 그런데 마짜끼리는 연인 관계를 거의 맺지 않을뿐더러 지속하기는 더 힘듭니다.
동성애자들은 종종 종로에서 번개 모임을 갖는데 공지를 본 동성애자들이 참여 신청을 합니다. 그리고 많은 인원이 모여 인근 호프집에 자리를 잡으면(종로 피맛골 근처에는 대규모의 인원이 들어갈 수 있는 호프집이 많습니다.), 시작하는 첫 순서는 항상 자신의 식성과 성역할을 밝히는 것인데, 참여자들은 그 순간 가장 적합한 상대를 구하기 위해서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갑니다. 이렇듯 식성과 더불어 때짜와 마짜는 동성애자를 묶는 강한 굴레입니다. 서로 식성이 통해야 성관계를 나누고 애정을 형성할 수 있겠지만 성역할도 맞아야 합니다. 그들은 이것으로 인해 힘들어 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3. 저의 환경 / 동성애·식성의 원인
저는 어릴 때 누나들 틈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누나들처럼 아무 것도 모르고 여장놀이를 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을 망쳤습니다. 백지 상태의 유년기에 여자 역할 놀이를 했던 저는 제대로 된 남성성이 자라지 못하고, 대신 여성성이 그 자리에 심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자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많이 고쳤지만 아직도 저도 모르게 여성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저 또한 식성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식성에 해당하는 사람을 보면 밤잠을 이루지 못하였고 그의 성기와 그의 육체를 갈구하였습니다. 저는 그것이 사랑의 감정인줄 알았습니다. 물론 이성애자 사이에서도 최소한 상대방이 이성으로 보여야 하고 성적 매력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절대적이라면 아무리 남자라도 그건 좀 이상한 것 아닐까요? 더구나 그것이 일부러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거기에 중독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동성애를 치료하던 중 어느 날 식성에서 해방된 것을 알았고 어린 시절부터 저를 억눌러온 식성에서 해방된 느낌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식성이 없어지고 남자가 나와 같은 개체임을 알게 된 시점부터 동성애는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자석이 같은 극끼리는 밀어내듯이 남자가 아무리 매력적이더라도 나와 같은 개체 - 그도 남자, 나도 남자 - 임을 새삼 식성을 벗어난 시각에서 보게 되자 더 이상 남자를 통해 나의 훼손된 남성성을 갈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나 본 많은 동성애자들이 저처럼 어릴 때 남성성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고, 저처럼 여성성이 채워진 동성애자는 행동도 여성적입니다.
그 외에 성적 관계를 통해 동성애를 배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동성애자 A는 동네 사우나 수면실에서 자는 동안 옆에 누운 남자가 성기를 만지는데 거부하려다 음욕을 풀자는 생각으로 그냥 두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도 그것이 자꾸 생각나 다시 그 사우나를 찾았는데, 다시 그 남자를 만나 수면실에서 은밀히 몸을 허락하였습니다. 자신을 만진 남자는 중년 아저씨였는데 이 일로 A는 식성이 중년으로 고착화되어 동성애자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B형은 정상적이었으며 결혼도 하고 애정관계도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형이 가끔 야동을 보곤 했는데 좀 더 색다른 것을 찾다가 게이포르노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형은 그것을 보며 자위행위를 하였고 점점 동성애적 섹스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동성애자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되었고, 부인과 이혼하고 게이바에서 만난 남동생을 애인으로 둘 만큼 그는 동성애가 주는 자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식성은 귀여운 느낌을 주는 연하의 남자였습니다.
저에게 상담을 해온 대학생 C는 고등학생 때 집에서 부모님이 PC 음란사이트를 막아놓아 볼 수 있는 것이 게이 사이트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전에 그는 한번도 동성애에 대해 생각하지 않던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게이 포르노를 보다가 그만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동성애의 자극에 크게 휘둘려 버렸습니다. 그는 동성애자 세계에서 있으면서도 이성애자였던 과거의 자신을 그리워하였습니다. 그 학생은 자신을 정상이라고, 원래부터 동성애자였다고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동성애가 정상입니까? 수면실에서 중년에게 동성 체험을 하고 중년만 찾아다니는 동성애자가 과연 정상입니까?
제가 식성을 벗어나고 이성애자들의 사랑의 방식을 깨닫기 시작하였을 때 좀 힘들었습니다. 그동안처럼 식성을 통한 관계가 아니라 진실로 마음을 나누는 방식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나아가고 마음을 열고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습니까? 동성애자의 사랑은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동성애자들의 애정 관계가 대부분 짧은 것은 성적 모티브가 이들 관계에 절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탐하는 기간이 끝나고 다른 공감대가 없으면 그들은 쉽게 헤어집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많은 커플이 ‘이번만큼은 오래 만나자’고 다짐을 해도 결국은 똑같습니다.
4. 성병 실태
동성애자 ‘찜방’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상가 지하나 외진 곳에 간판도 없이 주로 새벽에 영업하기 때문에 근처 상인들도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찜방은 대체로 어두침침하며 큰 방과 침대가 있는 작은 방들이 있습니다. 입장료를 내면 수면가운과 사물함 열쇠를 주는데, 들어가면 샤워하고 수면 가운을 입고 가스라이터를 들고 방들을 순회합니다. 방이 미등 정도만 켜있어서 많이 어둡습니다. 동성애자들은 상대 얼굴에 라이타를 비춰보고 식성에 맞으면 작은 방으로 데려가 성관계를 가집니다. 그냥 큰 방에서 남이 보거나 말거나 성관계를 가지며, 집단 성관계도 평범한 일입니다.
그들은 하루 밤에 수차례 여러 명과 관계를 가지며 항문 섹스를 하여 나온 정액, 대변, 피, 림프액 등을 입장할 때 주는 수건인 바닥에 널부러진 수건으로 닦습니다. 아침이 되면 온 방은 이 수건들과 피와 대변이 묻은 콘돔으로 가득합니다. 침대에서 관계를 가진 경우 몸이나 손에 묻은 위의 분비물들을 침대나 이불, 베개에 닦습니다. 수건은 찜방 세탁기에서 빨아버리고 침대나 이불은 언제 세탁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그 수건을 다음 입장시 또 사용하고 대변 찌꺼기가 잔뜩 묻은 침대와 이불에서 또 관계를 가지고 잠이 듭니다.
이런 찜방이 서울에만 여러 군데 있는데 통틀어 하루에 몇 백 명씩 찾아옵니다. 동성애자들은 찜방을 부정하지는 않으나 이성애자들의 ‘업소’에 비유하여 극히 음란한 동성애자만 간다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수의 동성애자가 찜방을 이용합니다. 동성애자 카페에 들어가셔서 자유게시판에 ‘찜방’, ‘사우나’ 등을 검색해 보십시오. 그곳 무용담들이 수두룩하게 검색될 것입니다. 댓글까지 보시면 아주 많은 이들이 광범위하게 이용하며, 별 비판도 없으며 오히려 비판하는 소수의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것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찜방을 통하여 무작위로 퍼지는 성병입니다. 실제 여성 역할을 하는 동성애자는 상대방이 성관계 도중 콘돔을 슬쩍 빼버릴까 봐 매우 걱정합니다.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가 보복심리로 콘돔에 구멍을 뚫어 오는 경우도 있고 관계 도중 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콘돔만으로 에이즈를 다 막을 수 없습니다. 또한 유부남 동성애자들은 애인을 사귀기 힘들므로 찜방에서 성욕을 해소하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부인까지 무차별적으로 감염됩니다.
‘곤지름’(항문사마귀)은 동성애자들이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떠는 병인데, 동성애자 카페에 들어가서 ‘곤지름’을 검색하면 몇 페이지에 달하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항문섹스를 하는 그들은 항문사마귀에 감염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이 병은 잘 낫지도 않고 재발이나 감염이 잘 되어 동성애자들은 곤지름을 아주 끼고 삽니다. 그리고 임질과 매독 등도 아주 잘 걸립니다. 매독은 2차 시기엔 피부 접촉만으로 감염될 수 있습니다. 성병에 걸린 상태에서는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므로 줄줄이 성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처음 찜방에 발을 들인 사람은 그곳을 주로 이용하는 동성애자 - 이들은 거의 100% 에이즈 환자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 에게 타켓이 됩니다. 대부분 나이가 어린 동성애자이므로 그곳 실정을 잘 모르고 호기심에 와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경우 경험 많고 능글능글한 동성애자들에 의해 에이즈를 비롯해 여러 성병에 감염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방문 첫 날, 에이즈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찜방 인근 주민은 동네에 에이즈 제조 공장이 있는 줄도 모릅니다.
동성애자들은 일반 남자들이 업소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하지만, 성병의 전파력에 있어서는 항문 성교를 하는 동성애자들의 찜방은 일반 업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 파괴력은 엄청납니다. 동성애자들은 이를 알면서도 뻔뻔스럽게 이성애자의 업소와 비교합니다.
무작위로 성병검사를 한다면 이성애자와 비교했을 때 아주 큰 차이로 동성애자의 성병 감염률이 높을 것입니다. 제 친한 친구 둘도 젊은 나이에 에이즈에 걸려 있습니다. 하지만 찜방은 여전히 다니면서도 절대 상대방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식성을 통해 육체를 갈구하고자 하는 욕구는 에이즈에 걸렸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나이 들면 결국 에이즈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확률 게임이고 도박에 빠진 사람이 결국은 가산을 탕진하는 것처럼 이 바닥에서 생활하면 본인이 아무리 건전하게 생활한다 하여도 결국 에이즈 걸린 사람과 만나는 것은 정해진 수순입니다. 더구나 동성애자라는 그다지 크지 않은 무리 가운데서 성관계 상대자가 돌고 돌면 결국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되며 자기도 에이즈 감염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입니다.
찜방에 대응하여 많은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채팅을 통한 만남인데, 이들은 사진을 교환하거나 캠을 통해 상대를 확인하고 어느 정도 식성이 되면 직접 만나 모텔로 갑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전날 찜방에서 뒹굴다 온 사람인지 서로 전혀 알 수 없습니다.
5. 항문 성교
동성애자들은 항문 성교에 대해 알려지는 것을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하므로 사람들에게 성적으로 문란한 극소수의 동성애자들만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성애자 세계에서 항문 성교를 하지 않으면 거의 장애인 취급을 당합니다. 항문 성교는 항문 안에 있는 전립선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척 아픔을 느끼지만 몇 번 하다보면 쾌감을 느끼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중독되면 그때부터는 동성애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수동적으로 조금씩 달아오르며 누군가에게 짓뭉겨지는 느낌을 통하여 온 몸으로 자극되는 쾌감은 남자가 정상적으로는 절대 알 수 없으며 전립선이 일정 자극되면 성기에 전혀 손을 대지 않고도 사정을 하게 됩니다.
그 정도까지 되면 그 사람은 외모만 남자이지 정서적으로 그냥 여자라고 봐야합니다. 남자를 볼 때 그 사람의 물건을 상상하며 그를 통한 여성적인 성적 자극을 생각합니다. 그건 남자가 아닙니다. 많은 동성애자를 보았지만 그들의 대화에서 항문 성교를 하지 않는다는 동성애자는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이 바닥에 갓 나온 어린 동성애자도 사랑하는 형이 원하면 아파도 참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항문 성교의 쾌감에 중독되게 됩니다.
그런데 항문 성교를 하면 성병 감염이 현저히 높을 뿐 아니라 항문이 완전히 망가지게 됩니다. 나이가 들수록 배변기능이 떨어지기에 변이 묽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항문이 늘어나면 변이 나오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변의가 있을 때 빨리 화장실에 가지 않으면 항문 괄약근이 조여주지 못하므로 변을 그대로 줄줄 싸게 됩니다. 동성애 카페 게시판에서 ‘변실금’을 검색하시면 그들이 항문이 늘어남으로 인해 받는 고통을 잘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평소에도 항문으로 가스가 나올 때, 혹은 괄약근에 힘을 줄 일이 있었을 때 묽은 변이 조금씩 새어나오므로 항문은 항상 이상한 액체가 흐르고 그들은 만성 항문소양증에 시달립니다. 늘어난 괄약근은 줄어들지 않으며 평생 치료가 안 됩니다. 나이가 더 들수록 항문의 힘은 더 빠져 증세는 갈수록 심각해집니다.
그러나 동성애자 세계에서는 이러한 것에 거의 주의를 주지 않습니다. 창피하므로 숨깁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문섹스의 쾌감을 포기할 수 없으므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항문섹스를 합니다. 이 정도가 되면 에이즈는 오히려 작은 문제일 뿐입니다.
6. 군대 내 동성애의 위험성
제가 아는 한 동성애자는 군대에서 동성애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고참이 자는 도중 자신의 성기를 만졌으나 그는 부하인 자신의 처지에서 거부할 수 없었고, 그와 같은 과정이 수차례 반복되면서 자신도 고참의 성기를 만지게 되었습니다. 또 이등병이라는 어려움 속에서 고참의 편애도 좋았습니다. 점차 성접촉은 대담해졌고 동성의 성기를 통한 자극이 완전히 각인되어, 그는 제대 후 자신을 기다렸던 여성과 헤어지고 동성애자 세계로 나왔습니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군대의 엄격한 상하계급구조 특성상, 동성애 성향이 있는 사람이 고참이 되면 내무반 내에서 수많은 졸병들을 성추행, 성폭행하는 것이 용이하고 실제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군부대 내 동성애가 허용된다면 동성애와 에이즈가 동시에 급속하게 확산될 것입니다. 또 “소대장과 일병 ○○가 애인관계더라.” 하는 식의 소문이 군 내 퍼진다면 군 사기는 떨어뜨리고 군 기강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7. 동성애 치료
저의 경우 치료한 지 4년 정도 됐을 때 식성을 비롯하여 남성에 대한 성집착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식성에서 해방된 것이 지금도 감격스럽습니다. 동성애는 극복하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동성애에 미련을 두면 40년이 걸려도 소용없다고 생각합니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처럼, 식성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동성애를 끊으려 하면 동성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떠한 중독 치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치료를 계속 해나갔을 때 동성애의 내부 균열이 미세하게 진행되고, 거대 빙산이 붕괴되는 것처럼 때가 되면 급속히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제 자신의 남성성이 얼마나 훼손되어 있었는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인 이후 늦게 동성애를 배운 사람은 이 과정만 극복해도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남성성이 훼손되고 여성성이 채워진 동성애자는 식성 치료 후 본질적인 동성애 치료인 남성성 회복을 해야 합니다. 이때가 되면 다른 남성을 통해 남성성을 갈구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에게서 남성성을 채우고자 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동안 관심이 없던 격렬한 스포츠나 축구, 족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 단계에서 군대 같은 환경에 들어간다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봅니다.
8. 미국의 동성애 치료
동성애자들은 동성애는 치료될 수 없으며 정신장애 목록에서 삭제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처음 목록에서 삭제하게 된 배경은 1970년대 게이 행동주의자들이 의사들을 상대로 온갖 협박과 압력과 로비를 행사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협회는 거의 함몰 지경에 이르렀고 많은 논란 끝에 1973년 정신질환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했고, 그 후 미국 심리학협회가 이를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1,021건의 동성애 치료 보고가 있었고, 그 자료들은 모두 폐기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에는 이성애자로 변화된 많은 사람들이 단체를 만들어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수기도 밝히고 치료도 받게 하고 있습니다.
9. 글을 마치며
현재 동성애인권운동은 위와 같은 동성애자의 현실은 전혀 말하지 않고 좋아 보이는 것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실태가 어떤지, 식성이 무엇인지도, 치료가 가능한지도 사람들은 모릅니다. 현재 드라마에도 그런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작가는 모르니까요. 저도 동성애자 생활을 할 때에는 주변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은 할지라도 식성이나 불리할 수 있는 것은 말하지 않았고 말하더라도 아주 줄이거나 이성애자와 비슷한 점을 들어 안심시켰습니다. 아마 동성애자들은 100% 그러할 것입니다. 진심으로 동성애자들은 식성을 입에 달고 살지만 대통령/장관/재판관/국회의원님은 한번이라도 그런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동성애 인권을 지지하는 많은 일반인들은 이러한 실태는 전혀 모르며 그저 감정적으로 인권을 인식하고 지지하는 실태입니다. 실제로 동성애를 지지한다는 한 아버지의 블로그에서 댓글로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는 동성애자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제가 “당신의 아들이 동성애자가 되어 여자같이 행동하고 종로 나가서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가져도 좋으냐?”고 물었을 때 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동성애를 지지하지 그것이 자신의 아들, 딸의 문제가 되었을 때는 또 다른 것입니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인권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대다수의 동성애 반대자들은 동성애자의 인권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동성애는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블로그 대화를 지켜 본 어떤 사람이 그러더군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달린 문제다. 현실 파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그런 싸구려 감상주의로 인권을 입에 담지 말라.”
동성애자의 인권을 법적으로 허용한다고 그들의 식성이 없어지고 찜방이 사라지며 항문 섹스를 안 하겠습니까?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들의 인권을 허락한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이 사회의 테두리에 저 모든 것들을 합법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그들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법이 아니라 더 이상 동성애를 비정상이라 말할 수 없게 되고, 치료할 길도 막히게 됩니다. 치료 받기를 갈망하는 동성애자, 청소년들, 그들 부모의 눈물 위에,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 위에 동성애를 강압적으로 올려놓는 법입니다. 아니 동성애의 모든 부작용을 극대화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고 끌어들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이든 동성애자들은 동성애 세계가 얼마나 무서운지 다 알고 있습니다. 젊음의 때가 가고 30대가 넘어 식성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하면 동성애자들은 그 후로 절대 고독과 외로움에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나이든 동성애자는 서로 얘기 안 해도 누가 에이즈에 걸렸는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젊은 동성애자나 일반인에게 이런 것들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또한 동성애자들이 제시하는 동성애자로서 멋지게 사는 자들의 사례에 속지 마십시오. 본질은 그것이 아닙니다. 주말마다 찜방을 헤매고 항문이 다 늘어나 변을 질질 싸고, 성병의 고통과 계속되는 공포에 계시달리며 결국 에이즈로 마감하는 대부분의 동성애자는 처음부터 그렇게 살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마음을 먹어도 시간과 환경이 결국은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것은 절대 인권이 아니며 인권법으로 해소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정상으로 인정하면 되는 것입니까? 실상은 저러한데 동성애자 결혼제도, 입양제도, 차별금지만 해놓으면 인권법입니까? 동성애를 치료하고 그 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한 인권 아닐까요? 적어도 국민들이 동성애가 무엇인지, 동성애자들의 실태가 어떠한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장관/재판관/국회의원님, 저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직접 이 모든 것을 확인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저를 부르시면 제가 찾아갈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 세계의 모든 것이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합법화가 된다면 그것은 전국민적인 재앙입니다. 부디 올바르게 판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동성애로 진통을 앓고 있는 서구사회를 모델링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은 건강하고 밝은 나라가 되어 전세계를 선도하는 선진한국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동성애자에서 전향한 김정현 올림
지면상 다 실을 수 없기에 요약본을 실었습니다. 동성애 진실에 관한 글 전문을 읽고자 하시는 분은 www.hiddentruth.kr(동성애 진실) 싸이트를 방문해 주십시오.
창문을 때리는 진눈깨비소리에 눈을떠, 시야에 들어온 가로등 불빛은 환영처럼 퍼져있었고. 불투명한 창은 나의 모습을 흐릿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삶의 마지막때에 나는 내 삶에 절망만이 남지 않았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나의 삶에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었고. 무엇인가를 뜨겁게 사랑했다고 말할수 있을까요.
돌아가신 할머니.할아버지.어머니가 저 방에 저렇게 누워계셨고. 나또한 저 할머니처럼 그분들을 앞에 모시고.. 저렇게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분이 돌아가심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세상속에 그렇게 잊혀진듯 살아갔었는데..
"간만의 깊은 잠에서 깨어난 뒤, 문득 나의 부재를 실감하고서는 눈물을 흘린다면. 내 딸, 내 아들아 그 눈물은 누구보다도 너희 자신을 위로해줄 것이다. 아비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음에 안도할 테니까..."
이 말을 보는순간 내 명치에서부터 무엇인가 뜨거운것이 끓어오릅니다.
중학교 선생님께서 시킨대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였을때, 나를 끌어안고 한참을 우시던 어머니의 품의 감촉.
'할머니가 사랑하는 내손주' 하면서 입에 넣어주시던 흑설탕캔디의 달콤한맛.
볼때마다 도망가는 나에게 그래도 용돈이라도 주시겠다고 할아버지게서는 한복바지 안켠에 꿰메놓은 지폐를 꺼내시시면서 '버석버석'소리를 내셨었죠.
그 촉감, 그 맛, 그 소리.. 그것이 지금도 들리는듯한데.. 나의 기억은 그분들을 기억못해도.. 나의 가장 깊은곳 가장 원초적인곳에서는.. 그것들을 그리워하고 있나봅니다. 그 사랑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나를 사랑하셨던 사람들이 나에게 준 그 영원한 감각...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시행하였던 전도에 너무나도 큰 은혜가 있어서 주신마음을 나누고자 이렇게 한자를 적어내 봅니다. 이주헌 전도사님과 함께하는 제자훈련은 뜨거운 위로와 중보기도가 끊이지 않는 은혜의 시간들이였습니다.
그 제자훈련의 중반즈음, 이주헌전도사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마음이 있다면서 그 마음을 우리와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모란역에 있는 모텔촌에서 전도하자는 권유였습니다. 우리가운데 임재하시고 사로잡으신 성령님께서는 그즉시 모든이들이 아무런 불평없이 순종케 하였으며, 우리는 기대감으로 다음주 금요일이 오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이 오자, 아침부터 제안에는 큰 두려움이 자리잡았습니다. 무엇이 있을지, 무엇을 겪을지도 모르는상황.
먼저 기도로 무장하며, 주님께서 부르심을 확신하고, 그현장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지체들또한 차를타고가는 내내 각목으로 맞을지도모른다, 난 이런 상황을 겪을것같다면서, 서로의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더군요.
그리고 도착한 모텔촌은, 상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시야가 시작해서 시야가 끝나는 곳까지 모든곳이 모텔촌. 바닥에 어지러이 떨어진 성인물광고지들.
주차장엔 주차된차들이, 거리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 공간에서 너무나도 이질적인 존재였습니다. 욕망이 끓어 넘치는 땅. 그땅에서 전도휴지를 돌리며, 거리의 성인지를 주우며 정화해나가는 우리를 수많은 이들이 조롱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주께서 이땅의 왕되심을 선포하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습니다. 주께서 보내신길, 반드시 주께서 보호하실것을 믿으며 그땅을 돌며, 예수님 믿으세요. 주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무사히 마침에 감사드리고, 다음주가되자 영적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첫날의 우리의 전도가 소문이 났는지, 둘째날부터 우리의 행동을 관찰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성인전단지돌리는사람, 클럽을 관리하는 사람들. 이들은 우리의 활동을 비난하고, 서슴없이 욕하였습니다. 얼굴이 알려질수록 이러한 인원들은 늘어가는것 같았습니다.
그런 비난이 부담스러웠던 것인지, 전도에 나서는 사람들의 수는 매일같이 줄어갔고. 남은사람은 몇안되어 처음 3명씩 3팀이였던 인원은, 3명씩 2팀으로 줄었습니다.
그렇게 4번째 전도활동을 위해 기도하던중, 우리는 주님께서 무엇인가를 하실것이라는 기대감을 주시는것을 깨달았 있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무엇인가를 보여주실것이라는 확신이 우리에게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출발한지 얼마안되어 성인 전단지 돌리는 사람이 우리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는 성인전단지를 돌리는 이들로서, 우리가 자신들의 밥줄을 끊는다면서 우리에게 바닥에 떨어진것은 줍되, 차에 꽃힌것은 치우지 말아주길 당부하였습니다. 큰 문제로 번지지않아 다행이었지만, 우리가 앞으로도 이 활동을 계속할수 있을것인가 불안하면서도. 주님께서 보여주실 큰 은혜전 사단의 방해였을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더욱열심히 쓰레기를줍고, 전도활동을 하였습니다.
얼마지나지않아 우리는 한명의 취객을 만났습니다. 과거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였다면서, 자신의 마음가운데 있던 어두움. 내 삶이 비록 지금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여도, 주님께로 돌아가고싶은 마음이 많다는 그의 고백은 우리의 전도의 목표였던, 이들속에 숨어있는 그리스도인을 직접만나는 첫 체험이였습니다.
전도사님과 우리일행은 그의 마음가운데 있는 어두움이 걷어지게 하시고, 주님과 함께함께할때의 기쁨의 삶. 그 열정과 감사를 다시 회복하게 해달라고 전심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우리가운데 첫 결신자였습니다. 우리는 이 극적인 만남에 감사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6번째 전도활동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많은것을 보여주시길 원하셨던것 같습니다. 이번엔 어떠한 두려움도, 그저 주님께서 새로운것을 보여주실것이라는 강한 마음하나가지고서 단 3명으로 구성된 전도원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 들어온 풍경은 믿기 힘들정도였습니다.
모텔촌의 간판은 번쩍이고 있었지만, 창문은 모두 불이 꺼져있고, 거리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리는 깨끗하여 생활쓰레기이외에 수거할 쓰레기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아무리 길을 걸어도 성인광고물은 오래되어보이는 광고물 몇개만이 보일뿐, 우리를 막아서던 전단지배포하던분들, 우리를 비아냥거리던 모텔출입문을 지키는 이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내내 감사의 찬양을 불렀습니다. 길거리에는 더이상 술취하여 돌아다니는 이도 없고, 그저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만이 보일뿐이였습니다.
그 거리 한복판에 서있는 모텔들이 오히려 이질적으로 보일만큼, 그땅은 변화되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본 그 변화가 일시적이라 말할수도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우리는 주의 말씀에 따라 그 땅을 위해 기도하며 나아갔고, 주님께서는 도저히 변할것으로 보이지 않던 그땅을 변화시켰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주님의 계획가운데 있는 것이였습니다. 우리가 주의 마음을 품은것도, 우리가 그 주의 뜻에 순종한것도. 그리고 그땅을 바꾸신것도.
우리가 한것은 아주 소소하고, 큰 변화를 도저히 기대하기 힘든 약소한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주께서는 그 기도와 순종에 이렇게 거대한 응답으로 주의 능력을 펼쳐 보이셨습니다.
지금 제가 고백할수 있는 것은 이것인것 같습니다.
나는죽고 예수로 산다는것, 그것은 고백하는것만으로 끝나는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그 예수로 사는 삶.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비로소 내안에도 예수로 산다는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긴가민가 하면서 다시금 죄를 짓고 회개를 반복할것이 아니라, 회개의 기쁨을 간직한채, 주께서 주시는 음성대로 선한싸움을 시작하며 나아가는 젊은이교회 지체들 되시기 바랍니다. :) 주님, 하나님, 기도, 은혜, 성령, 예수님, 예수, 순종, 복음, 교회, 그리스도인, 그리스도
살을 꿰뚦고, 뼈가 으스러지며 손안으로 박히는 두개의 철심. 차갑게 식은, 싸늘한 시선. 못으로 이루어진 냉소. 냄새나고 진득한 고통이 못을타고 혈액을 타고 돈다. 팽팽하게 잡아당겨지는 발, 당신을 잡아 부인하는 자들의 몸부림. 발목관절을 뚦는 기괴한 소리. 복숭아뼈를 부수며 들어오는 소리. 그소리 우리가 어찌 잊으리. 죄가 뼈마디마다 울리며 대퇴부를 따라 하나씩 흘러온다. 타오르는 상처가 빼곡한 피부 고름져 덩어리진피부가 갈라지며 피를 뱉어내고, 그 피가 지금 우리의 안에서 흐른다. 드러난 척추는 십자가의 나무가시에 찔려 골수를 내뿜는다. 고통에 몸부림쳐 지른 목젖은 튀어나와 엉겨 핏덩어리가 떨어지되. 그 찟겨진 살이 우리안에 함께 있도다. 눈을 들어 그 현장을 목도하라! 그리고 그분이 고통을 기억하라. 생명의 떡이 우리를 살릴때에 그의 살이 채찍에 찟겨 날아갔도다. 구원의 피가 우리의 심장을 흐를때 그의 피가 갈보리 동산위에 뿌려졌도다. 세상에 가득해진 핏물은 우리의 눈을 씻어내 우리를 만드신 이와 기쁨의 재회를 하게 하셨고. 육신의파편은 우리손에 들어와 맏형의 삶을 따라 살게 하리라. 죄인의 가장 작은 빚을 갚기위해 당신이 도살되신것처럼. 당신으로 인해 생명을 얻은 우리도 죄지은자를 위해 번제되리라.
많은 시간동안, 나는 오로지 한가지 목표를 위해 살아왔습니다. 다른것도, 다른 나의 사회적인 위치를 위해서도 살았지만, 결론적으로 내 삶의 의미는 한가지였습니다. 내 어머니의 죽음. 그 죽음이 보여준 찬란한 빛. 그것이 무엇이였는지를 알고싶어하며 살았습니다. 폐암을 선고 받으시고, 죽음이 다가오는 그 순간. 하루하루 몸의 기능이 정지해가고. 암이 뇌까지 퍼져 마지막 순간엔 아들인 나조차 알아보지 못했던 내 어머니. 그분이 죽어가는 상황가운데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친가의 가족들을 교회로 이끌었으며. 교회내의 많은 분들의 다툼을 어머니는 들어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할것을 권고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은날. 그 장례식에는 믿기힘든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천의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줄을 이어 들어왔고, 천주교의 신부님, 수녀와 목사님, 교우분들. 다녀간 사람들은 수백을 넘어 천을 이루었습니다. 모두가 어머니의 생애에 어머니가 권했던 화해, 교회로 돌아오겠다는 고백,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였던 삶을 살겠다면서 다짐하며 돌아갔습니다. 한사람이 죽음으로, 수백의 사람이 그리스도께 돌아왔으며, 분열되던교회가 회복되었으며,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최초로 겪은, 그리스도인의 영향력의 사건입니다. 나는 그 삶이 언제나 궁금했습니다. 나는 그삶이 언제나 부러웠습니다. 세상가운데의 물질적인 성공. 세상가운데 많은 성공이 남발하는 가운데에 오로지 어머니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공이 아닌 승리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나는 그 삶을 살고싶었습니다. 그 삶이 아니고서는 나는 결코 만족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신학을하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 생애의 삶을 10여년을 살았습니다. 단지 그 불꽃, 마지막의 찬란한 불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 주께서 나를 부르신다 합니다. 이시간 나의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질문은, 과연 나는 그것을 이루었는가.. 입니다. 내 삶엔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으며, 전도사시절엔 아이들에게 제대로된 복음을 전할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예수를 믿어야함에 대해서 잘 전하면서 살수는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 이순간 후회를 함이 올바를 것입니다. 맞습니다. 후회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는 시기나 좀 너무 이름에 의아해하면서도, 저는 기쁨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저는 지금 어머니의 삶을 이해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삶의 찬란한 빛을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분가운데 너무나도 명확한 예수의 모습, 그분의 삶가운데 명확한 천국에대한 확신은 다른이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으며, 전도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리지 않고서는 편히 눈을 못감을걸 알고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자신의 삶이 이때를 위함을 깨달았습니다. 그순간 어머니는, 내 삶의마지막순간, 기회를 주심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빛이였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주신 지혜였습니다. 나또한 어머니의 삶을 배우고자 노력하면서, 어머니의 삶을 공부고자 노력하면서. 죽는 이순간 깨닫는것은..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빛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로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었을사람. 나로인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웠을사람들.. 나로서는, 지금으로는 나는 그들이 나의 죽음을 들었을때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가운데 내 삶을 통해 비쳐졌을 성령님이. 그들에게 전했던 그리스도의 선포가. 그것이 전해졌다면. 그것이 그들가운데 조그마한 조각으로 자리하고 있다면! 내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 내 삶은 주께 사로잡혀 쓰임받았을 삶일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나의 장례식장에 단한명의 사람이 없을지라도.. 나는 기뻐할수 있습니다. 적어도 내 삶이 그리스도가 가장 우선이였기에. 적어도 나는 단 한순간이라도. 예수의 삶을 살아봤기에.. 이땅에 내가 남길것은 하나 없으되, 다만 한가지 말을 하고 간다면.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니, 내 삶에 후회가 없으리로다. 내 삶은 고난이였으나, 주께서 그것을 향기로운것으로 받으시니, 내 삶이 높아졌도다. 이 마지막때, 나의것은 사라지고 나는 온전히 태초의 것으로 돌아가. 주품에 영원히 안기리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전역후, 나를 변화시켜주신 하나님은 많은것들을 달라지게 하셨다. 구원의 주님을 지식으론 알고있었지만, 내 마음은 주를찾기에 갈급했었다. 구원의 능력을, 그 죄사함의 능력이 주는 유익만을 보고, 부끄럽지만 마치 티슈상자에서 뽑아쓰는 휴지마냥. 죄를 지어놓고 회개하면되지, 회개기도하면 되지 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내 내면에는 이게 아닌데, 내 행동이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데 하면서.. 조용하고 아무도 없는 시간이되면 슬그머니 한숨을 쉬고. 때론 소리내어 울기도 했다. 그렇게 속으론 만신창이였던 내 신앙. 그럼에도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군 복무중 어느날, 꿈을 꾸었다. 내가 어릴적에 가했던 폭력, 그리고 군복무중 정말 싫어했던 이에게 폭력을 가하는 꿈이였다. 그 날아가는 주먹이, 내가 던질 돌들이 십자가에 달릴 그분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폭력은 사울의 창이 되며, 바나바에게 던진 유대인들의 돌이 되었다가,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그 순간으로 변했다. 하지만, 대상은 예수님이셨다. 그분은. 묵묵히 맞으셨다. 비명을 지르고 신음을 지르는 속에서. 그분은 묵묵히 맞으셨다. 그리곤, 나를 보고 웃으셨다. -슬퍼하지 마라-면서.. 기상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나서 눈물을 훔치는데, 왜이리 닦아도 닦아도 눈물이 나던지.. 하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해서 지식으로만 알고, 그 아픔과 생각을 전혀 공감하고 있지 않던 나에게 예수님은, 당신자신의 마음을 내게 주셨다. 그때부터, 나를 다루시는 아버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노래는 군대가기전, 내가 꽤 좋아하던 곡이였다. 범프오브치킨이란 그룹이 부른 노래인데, 제목이 러프메이커이다. 웃음을 만드는 사람. 그때엔 이런 함께하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위안으로 들었던 곡이였지만, 오늘 우연히 동영상과 함께 보는 중에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다. 함께하는 친구의 모습속에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 가사중에 나오는 웃음을 '사랑'으로 바꾸어 봤습니다. -
- 가사 -
눈물로 젖은 방에 노크소리가 굴러왔다. 누구와도 만날 수 없는 얼굴인데, 뭐야, 누구야?
「이름을 댈 정도로 대단한 이름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이렇게 부른다 "러프 메이커" 너에게 사랑을 가져왔어. 추우니까 들여보내줘」 러프메이커-? 농담하냐! 그런 거 부른 기억은 없어. 상관 말고 사라져 줘. 거기에 있으면 울 수 없잖아.
내 슬픔에, 내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지 못했던 나는 혼자 꽁해져 있었다. 그리고는 울었다. 나는 필요없는 사람이야.. 나를 왜 살아있는거지? 난 살가치가 없어.. 하며 울었다. 그때, 주님은 나의 방문을 두들겼지만 나는 귀를 틀어막고 주님의 목소리를 거부했다. 대홍수의 방에 노크소리가 크게 울린다. 그 자식 아직 있었던 거야? 사라지라고 말했잖아. 「그런 말을 들은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매우 슬퍼졌어 어쩌지 울 것 같아」 러프메이커-? 농담하냐! 네가 울면 어떡해. 울고 싶은건 내 쪽이야. 이런 거 부른 기억은 없어. 그래도, 그래도 주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내가 죄에 대해서 끙끙앎고 있어도. 이미 회개한 죄는 더이상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히브리서 10: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그리고는 공감해주신다. 우리의 슬픔에, 우리의 아픔을 통감해주신다. 두사람의 울음 소리 멀리......
문을 사이에두고 등을 맞대고 딸꾹질 섞인 울음 소리. 무릎을 껴안고 등을 맞대고 완전히 지친 울음 소리. 지금이라도 반드시 나를 웃길 작정인가, 러프메이커- 「그것만이 사는 보람이다 웃기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어」
주님은, 사랑이셔서, 우리같은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해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피뭍은 그 손으로 우리의 손을 붙잡으시면서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15:0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안에 머물러 있어라. 주님은, 사랑을 전파하로오신 분, 사랑을 전하기 전까진 돌아가시지 않으신다. 지금은 너를 방에 들어오게 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곤란하게도 문이 열리지 않아. 쌓인 눈물의 수압 때문이야. 거기에서 문을 밀어 줘. 열쇠는 벌써 열었으니까. 무슨 말이든지 말해 줘. 어떻게 된 거야? 어이, 설마! 러프메이커-? 농담하냐! 이제와서 나 혼자 두고 상관않고 사라져 버렸다. 믿은 순간 배신했어. 러프메이커-? 농담하냐! 때로는,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느낄때가 있다. 매달리고, 달려들고 고함을 질러도 오지 않으시는 주님, "주님, 왜 저를 만나주시지 않으십니까? 주님, 왜 나를 이렇게 버려두십니까? 저 힘듭니다. 저 아픕니다. 주님, 치유하소서! 나를 버리지 말아 주소서! 주님 !" 그리고는 이내 화가 치밀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저주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면 나한테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반대쪽 창문이 깨지는 소리. 철 파이프 가지고 우는 얼굴로 「너에게 웃음을 가져왔다」 하지만 주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 시간에, 그때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달려오십니다. 시편의 기자들도, 응답하지 않으시는 주님에 대해 부르짖고, 버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는 감사의 찬양을 부릅니다. 이렇게 함께하시고 역사하신 주님의 위대하심을! 작은 거울을 꺼내서 나에게 비추고 이렇게 말했다. 「너 우는 얼굴 웃겨」 질려버렸지만 결국 웃어버렸다.
그리고 죄의 모습에서 해방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시며 우리에게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는 앞으로 달라진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주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친구로서, 동역자로서의 삶을 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8장 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 나를통해 이루소서!
몇몇 교회의 미친짓에 대해서 글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제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적어보겠습니다. 저는 사회적 현상을 관찰하는것을 조금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상당히 좋아한답니다. 저는 여기저기, 세계의 모습을 직접 보고 현지의 사람과 이야기도 해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발로 가보지 못한곳의 풍경과 생활을 알고싶어서 세계지도와 관광지에 대해서 안내가 나와있는곳을 뒤지는걸 좋아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곳식으로 속되게 이르면은, '여행 오타쿠'라 할것입니다. 또는 '고고학공부하는 일개 대학생'이겠지요. 저는 종교적 유적과 발달배경등을 하나씩 배워나가면서 여러가지를 익히는중, 한가지 사실을 보았습니다. "종교의 권력화 이전과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 말입니다. 기독교는 최고전성기를 치닫던 로마의 국교가 됨과 동시에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끝내는, 로마를 멸망시키고.<교황과 황제, 혹은 왕과의 마찰>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고<마녀재판><십자군 전쟁>, 스스로 분열해서<종교개혁> 서로를 죽이는 비극<30년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비극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곳에서 또다른 타락으로 분열합니다.<필리핀의 카톨릭타락등> 불교또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과 아시아 전역에 퍼져 종교적 권력을 가진이들은 한나라의 제왕을 넘어서는 권력을 휘두른 사건은 고등학교때부터 배울것입니다. 또한, 한국에서 배부른 행동의 거만한 절들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곤하죠. 이슬람의 권력화는 여러분들은 늘 뉴스속에서 보고 계십니다. 이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정신적인 지도자의 타락속에 굶주리는 백성들. 과거에도 또한, 강력한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잔인한 술탄들은 어땠는가요. 하지만, 권력을 잡기 이전의 그들을 봅시다. 기독교는 땅굴을 파면서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사막으로 나선 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탐욕에서부터 스스로를 격리하기 위해 나선 '사막은자'들에 대한 책이 요새 나왔더군요. 그들은 목회자들도 아니였으며, 그저 평범한 농부나, 상인들이였습니다. 어떠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아픔이 클수록 그들의 세력은 커졌습니다. 그 피와 눈물은 로마를 집어삼켰습니다. 불교는 자아을 깨닫기 위해, 무상의 세계속에서 자신을 내던졌습니다. 삶의 필요한 요건들을 모두 내던지고 깨달음을 위해 모든걸 희생하였죠. 싯다르타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스스로를 단련하고 또 단련했습니다. 그리하여, 동양의 모든문화를 아우르는, 거대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슬람 또한 스스로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순교하기도 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전통의 굴례속에 얽매이게 하였습니다. 수많은 금지조항속에 신의 은총을 바라던 그들은,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장황하게 떠들어 댔습니다만, 말하고자 하는바는 한문장입니다. "종교의 권력화"는 종교의 타락을 부른다. ps. 지금의 세상을 지배하는 세 종교의 타락은 수많은 이단들을 만들어 냅니다. 서로 섞이기도하고, 사상이 다르기도하고. 하지만, 우리가 그 갈라진 그 '몇몇'을 보고 그 종교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그들의 핵심사상과 의도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말입니다. 그 덩치의 심장을 보지 않으면 우린 코끼리다리에 훈계하는 꼴입니다. 그런 이쑤시개로 찔러봤자, 이미 커진 덩치들은 아픈척도 안합니다. 비판을 하려면 심장을 찌릅시다. 그 핵심을, 원래의 그 의도를 말입니다. 그들의 '진리'가 그들을 움직이는 '사상'과 다를때에 우린 비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이 스스로의 상태를 점검하고, 깨달아 개혁할때에 비로서 그들의 머릿속이 움직입니다. 스스로를 정립할때, 스스로의 모순을 깨달았을때에. 말입니다. 부족한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허 Philipp Friedrich Silcher 1789∼1860
1789년에 태어나서 1860년에 사망했네요
요약
독일 작곡가.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슈나이트 출생. 처음에는 교사생활을 하였으나 C.M. 베버를 만난 뒤 음악가를 지망하였다. C. 크로이처와 J.N. 후멜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운 뒤, 1817년 튀빙겐대학 음악감독이 되어 합창단을 창단하였다. J.H. 페스탈로치의 영향을 받아 민요를 이용한 교육에 공헌하였으며, 민요의 수집·편곡에 힘썼다.
설명
독일 작곡가. 슈투트가르트 근교의 슈나이트 출생. 처음에는 교사생활을 하였으나 C.M. 베버를 만난 뒤 음악가를 지망하였다. C. 크로이처와 J.N. 후멜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배운 뒤, 1817년 튀빙겐대학 음악감독이 되어 합창단을 창단하였다. J.H. 페스탈로치의 영향을 받아 민요를 이용한 교육에 공헌하였으며, 민요의 수집·편곡에 힘썼다. 52년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H. 하이네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로렐라이(1837)》는 그의 대표작이다.
Deadprogrammer's cafe스타벅스 상표에 있는 그림이 사이렌이란 사실은 이제 꽤 알려진 일인데요. 저 사이렌 얼굴 양 옆에 있는 야자나무 같이 생긴게 뭔지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사이렌의 다리(꼬리?)입니다.   Deadprogrammer's cafe사이렌은 반인반수 형상을 하고 있는 게 특징인데, 반신이 물고기 형상인게 인어(Mermaids)고, 그 중에서도 다리가 두 개인 사이렌을 Melusine이라고 부른다는 군요. ( BoingBoing에서) 추가: 이 소식을 전한 블로그에서 계속하는 꼭지중에서 100 Views of the Empire State Building이란 게 마음에 들더군요. 블로그 주인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100장을 찍어올리겠다는 프로젝트인데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 합니다. 현재 #22까지 진행중이니까 아직 볼 게 많이 남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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